상단여백
HOME 사회 세계
수백 년간의 논란, 종지부 찍을 것인가간도 문제 드디어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
1907년 제작된 대한신지지부지도로 북간도만 우리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난 1일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1909년 9월 4일 채결된 간도협약의 무효 소송이 제소 되었다. 수십 년에 걸쳐서 제소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지만, 왜 100년이 지나가는 2009년, 올해에 갑자기 간도문제가 터져 나왔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의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지나면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시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시민단체가 제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100년 점유설은 루머에 가깝다고 한다. 이는 지난 1997년 백산학회 학술회에서 나온 이야기 인데, 당시 한 교수가 학술회도중 간도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발언한 것이 와전되었다. 때문에 100년 점유설에만 집착하게 되면 100년이 지났기 때문에 찾을 수 없다는 포기감에 사로잡혀 간도를 아예 포기해버릴 수 도 있으므로 이 인식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분쟁은 이미 오래전부터

 간도는 백두산 북쪽의 만주지역 일대를 말한다. 크게 동간도와 서간도로 나뉘는데 동·서의 분계점이 정확하지 않아 오늘날 까지도 논란이 많다고 한다. 역사학적으로 간도는 고구려, 발해 시대까지 한민족의 땅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여진족이 살게 되었고,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운 직후에는 거의 빈 땅이 되었다. 그러다 1712년 청에서 묵극등이라는 사신이 조선으로 들어와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국경비인 백두산정계비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양국의 최대 논란이 시작된다. 동위토문(東爲土門)이라는 한 문구가 논란의 중점이다. 청나라의 묵극동은 토문강이 두만강의 지류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토문강을 두만강과 같은 강이라 해석한 반면, 조선은 토문강은 송화강의 지류 중 하나라고 보았다. 즉, 이 쟁점의 핵심은 토문강을 두만강이라고 보는 중국의 견해와 토문강을 송화강으로 보는 조선의 견해로 팽팽하게 맞선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두 나라간의 땅에 대한 시비는 있었으나 큰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간도협약으로 인해 양상은 크게 바뀌게 된다. 
 

1779년 프랑스의 P 산티니가 제작한 지도로 조선의 영토가 북,서,동간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간도협약은 무효화 될 수 있을까

 간도협약은 1909년 일제가 을사늑약으로 인해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을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청나라와 맺은 양국 간의 협약이다. 총 7개의 조항으로 이루어진 간도협약은 ‘일제가 남만주 철도 부설권과 푸순탄광의 채굴권을 청나라로부터 받아온다. 대신, 일제는 대한제국의 영토인 간도를 청나라에 양도 한다’는 것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 조약을 보면 일제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대한제국만 피해를 보고 청일·양국은 서로 윈윈하는 협약을 맺게 되었다.

 민족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간도는 3300년에 걸쳐 한민족이 상주했던 땅이다. 고조선 시대부터 살아온 우리 민족의 땅이 타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어떤이들은 ‘민족적 자존심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관점은 문제가 있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간도협약은 무효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간도가 우리 땅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952년에 일본과 중국은 ‘중·일 평화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 조약에서는 중일 양국이1941년 이전에 맺었던 모든 조약은 무효로 한다고 명시되어져 있다. 때문에 간도는 아직까지 분쟁지역에 속한다. 간도 영토분쟁은 단순히 간도협약이라는 침탈의 역사 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 조선 초기부터 시작되 수백년동안 이어져온 분쟁이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간도되찬기 운동본부에서 주장하는 되찾아야할 간도의 모습니다. 연해주와 만주는 제외
애국심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
 
 앞서 말했듯 간도문제는 지난 1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정식으로 제소가 되었다. 하지만 제소가 인정받기 에는 여러 가지 에로사항이 있다. 첫 번째로 우리나라가 아직 분단국가라는 점에서 제소가 인정받기 어렵다. 남한이 일방적으로 제소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1962년 북한과 중국이 맺은 영토협약이다. 이 협약으로 백두산의 2/3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분단 상태에서 서로가 단일 국가라는 논리를 내세우려면 북·중 영토협약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세 번째로 중국의 대응을 짐작해보자. 국제법상 영토분쟁은 피제소자가 응해야 법정에 설 수 있도록 명시해두고 있다. 즉 중국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 제소는 제소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간도가 우리나라 땅인지는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영토분쟁에서는 영토를 빼앗겼다고 주장해 영토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세 가지 명분이 필요하다. 첫째는 ‘역사적인 근거’이고 둘째는 그 땅이 현재 ‘어느 나라에 의해 관리’되고 있는지 그리고 끝으로 ‘국제법상의 조건’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1902년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여 자치권을 행사한 역사와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일본이 폭력 및 강욕으로 빼앗은 땅을 종래로 되돌린다’라는 선언문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근거로 간도협약은 법적 권한이 없는 제 3국인 일본이 체결한 것이기에 무효라는 것을 들 수 있다. 국제법상 조약은 당사국에게만 효력이 있을 뿐 제 3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자. 한국이 간도의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기에 비록 지금 중국이 간도를 점유되어 있다 해도 주권 변경이 있었다고 볼 수 는 없다. 
 
 이번 소송이 몇 백년간의 논쟁에 마침표를 찍게 되는지 단락을 바꾸는 마침표가 될 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은 지나친 애국심으로 역사마저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간도의 정확한 경계는 논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지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