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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a Changwon Univ. #1 우리대학 탁구부 박효원 선수를 만나다성공의 핵심은 얼마만큼 즐기느냐에 달려있다

작은 공과 라켓하나로 이루어지는 ‘탁구’라는 운동은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생소하다. 하지만 그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깊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남규와 현정화를 필두로 2002 아테네올림픽 유승민까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본 한국이 낳은 탁구스타들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 우리대학 탁구부의 미래를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이가 있다. 바로 지난 달 두 개의 대회에 거쳐 단식과 복식에서 금메달을 휩쓴 박효원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경기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와는 달리 순수한 여대생의 모습을 가진 그녀와의 첫 만남과 함께 인터뷰가 시작됐다.

 

chapter1. 우연한 만남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우연과 직면하게 된다. 그녀 또한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탁구를 접한 시기가 비교적 늦었다.”며 운을 뗀 뒤 “어릴 때부터 활발한 성격 탓에 체육과목을 제일 좋아했다. 어느 날 우리학교의 교기였던 탁구부의 감독님께서 뜬금없이 왼손잡이를 찾으셨다. 왼손잡이였던 나는 호기심에 손을 들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탁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왼손잡이가 탁구에서 중요한지에 대해 묻자 “탁구선수들은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왼손을 사용하면 코스나 각도 면에서 더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유리하다.”라고 자신이 가진 장점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우리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도 남달랐는데, “거제중앙고등학교를 졸업 한 뒤 실업팀으로 먼저 입단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통제도 심했고 너무 빡빡한 일정 탓에 몸도 지쳐가면서 많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알고 있던 선배를 통해 대학에 가서도 충분히 탁구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재밌게 운동을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22살, 이르진 않은 나이였지만 나의 미래를 위해 우리지역의 명문대학인 창원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chapter2. 성적의 비결

운동부의 성적이나 생활면에 있어 팀의 분위기는 훈련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이다. 종목을 위한 특별한 훈련법에 대해 물으니 “특색이 있는 방법이라기 보단 우리 팀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좋다. 무엇보다 강제성을 띄지 않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다. 그리고 선 후배간의 의사소통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운동시간 외에도 팀워크를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즐기면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인거 같다.”며 창원대 탁구부만의 특징을 설명했다. 운동선수는 훈련계획을 1년 단위로 짜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그녀는 “3월이 되면 시즌이 시작되고 봄에 걸쳐 시합이 3개정도 잡힌다. 그렇기 때문에 1~2월쯤 지옥의 동계훈련에 들어간다. 전반기를 마치고 나면 6월부턴 비시즌이 된다.” 이어 “여름 휴식을 취한 뒤, 10월엔 1년 중 가장 중요한 전국체육대회가 있다. 이 시기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것 같다”고 했다. 팀에서의 역할에 대해 묻자 “현재 창원대 탁구부에 소속된 여자선수는 7명이다. 학번은 14학번이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실업팀을 거쳐서 왔기 때문에 이 중에서 2번째로 나이가 많다. 언니로써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chapter3. 피할 수 없는 승부

문화부장관기 개인단식 우승과 대통령기 개인복식 우승은 최근에 그녀가 이뤄낸 값진 결과물이다. 슬럼프를 겪던 중 출전한 대회여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았다. 대회가 가져다준 영향 및 느낌에 대해 묻자 “문화부장관기는 단체전에 욕심이 컸던 대회였다. 이전까지 우리대학 탁구부가 2연패를 하고 있던 중이였고, 이번에 이기면 3연패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예선부터 결승까진 수월하고 올라갔지만 최종전에서 군산대에게 허무하게 패하고 말았다.”며 그때 당시의 아쉬움을 토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패배였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다음날에 있었던 개인단식에 참가했고, 다시 결승까지 진출했다. 뜻밖에도 상대는 또 다시 군산대였다.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정말 이기고 싶었다. 결과는 3대0, 나의 완승으로 끝이 났다. 단체전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떨쳐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어 “평소에 단식보단 복식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왼손잡이고 한선영선수가 오른손잡이여서 호흡이 잘 맞았다. 대통령기도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우리가 기울인 노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 있었다. 그 과정은 우승이라는 귀한 결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라며 승리의 기쁨을 한 번 더 만끽했다.

 

chapter4. 값진 경험

운동을 하면서 고비와 행복했던 순간에 대해 질문하자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부 내에서 구타를 많이 당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셨다. 탁구를 그만둘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지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그분들을 설득했다. 나의 진심이 부모님께 전달되었고 그 결과 다시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뒤이어 “작년 전국체전이 기억에 남는다. 결승까진 무난하게 올라갔지만 거기서 위기를 맞았다. 4경기 까지 세트스코어 2대2로 팽팽하게 흘러갔다.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값진 승리를 따냈다. 그때가 나의 탁구인생에서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인생의 롤 모델에 대해 물으니 “어릴 적 나를 지도해주셨던 김무교 코치선생님이 나의 롤 모델이다. 같은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더 자세하게 지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국가대표로 활약한 경험도 있으셔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침착성과 정신력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chapter5. 탁구는 나의 길라잡이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당장 다가오는 가장 큰 대회는 전국체전이다. 준비를 잘해서 2연패를 꼭 달성하고 싶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남은 2년 동안 더 많은 성적을 거두어 창원대의 위상을 전국에 견고히 하고 싶다.”며 우리대학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다. 진로에 대한 질문에 “탁구선수로써의 생활을 오래하고 싶다. 졸업하기 전 유니버시아드대표로 선발되는 게 목표다. 왜냐하면 더 큰 무대로 나가게 되면 그만큼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탁구계는 국가대표의 인원이 작기 때문에 경쟁이 상당히 치열하다. 따라서 프로팀에 들어가는 것도 많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꿈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여 졸업을 한 뒤 실업팀에 입단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쭉 탁구를 향한 공부를 더 해나가고 싶다.” 마지막 질문으로 박효원 선수에게 탁구는?이란 물음에 “탁구를 접한 뒤 15년 동안 항상 운동이 즐거웠다. 그만큼 탁구는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접착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나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 단계 성숙시켜준 고마운 길라잡이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간은 살아가는 데 있어 스스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많은 조건들을 따지게 되면서부터 개개인의 미래는 길 잃은 배 마냥 바다를 떠돌게 된다. 그러나 박효원선수는 달랐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해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모습을 봤다.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과 앞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그녀의 마음가짐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닐까? 나태해진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글·사진 신현우 기자 kcrobnc5@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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