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아저씨의 let it be

  비틀즈의 명곡 "Let it be"를 들을 때마다 나는 유럽여행 중 만난 한 인도아저씨를 떠올린다. 지난여름 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6인실 침대칸을 선택하였는데, 내가 머물게 된 칸에는 나를 제외하고 스페인 대학생 1명, 독일 할머니 2명이 있었다. 야간열차에서는 특히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수십 번 들었는데 같이 머물게 될 구성원들을 확인하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찰나 허름해 보이는 옷차림새를 하고, 때 묻은 가방을 든 인도에서 온 부자(父子)가 내가 머무는 칸에 들어왔다. 막상 인사는 하긴 했지만 그들의 차림새와 인도에서 왔다는 그들의 배경이 어느새 나의 뇌리에 박혀 나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대하게 되었다. 몇 마디의 인사를 제외하고 그들과는 별다른 대화 없이 나는 괜히 그들을 소매치기 범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의 소지품들을 열심히 보안하기에 열을 올렸고, 심지어 화장실에 용변을 보러 갈 때도 직접 들고 갈 정도로 지나치게 과잉대응 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야간열차 도착예정시간에 맞춰 짐을 싸고 나갈 채비를 마쳤는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는 서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싶어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경유지인 독일 함부르크 역에서 사고가 있어 기차가 다른 노선으로 한참을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한 시간도 아니고 적어도 네 시간이상 걸린다는 말에 나는 화로 가득 찬 상태로 다시 내가 머물던 칸으로 돌아왔다. 전일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점심이 다되어서 배도 고프고, 여전히 마음속의 짜증과 화는 가시지 않았다. 혼자서 그렇게 화를 내고 있을 때 맞은편에 있는 인도아저씨는 가만히 책을 읽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태연히 책을 보고 있는 인도아저씨가 이상해 보여 나는 “당신은 화도 나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웃으며 “Let it be”라고 말한다. “뭐라고 하셨어요?”라고 나는 되묻자, “상황이 어떻든 달라질 것은 없어. 사람들은 그들의 배경,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늘 부정함에 따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지. 하지만 그 상황들은 곧 지나가.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도착한다는 것이고, 그냥 지금 이 상황을 순리대로 내버려두면 돼.”라고 말하며 그의 손때 묻은 가방에서 조그마한 빵을 꺼내 나눠 줬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건네받은 빵을 손에 쥔 채 한참을 멍하니 창밖의 풍경만 바라보았다. 드넓은 벌판을 보며 여태껏 살면서 사람을 배경으로만 판단을 하고, 힘든 일이 있었을 때도 늘 그 상황만 부정하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과거를 떠올렸다. 그의 배경만을 가지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았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고, 살면서 도움이 될 큰 교훈을 준 그에게 고마웠다. 기차에 몸을 맡긴지 총 16시간이 지나 나는 마침내 코펜하겐에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리는 작별인사로 비틀즈의 “Let it be”를 흥얼거리며 헤어졌다. 그 이후 나는 내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을 때 초조함, 좌절감을 떠올리기보다 비틀즈의 그 노래를 부르며 그때 일을 회상해본다. 그러면 어느새 그때 그 인도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나와서 나에게 말한다. Let it be.. 순리대로 맡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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