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기행

출렁이는 신록으로 떠나는 유적지 답사길, 장맛비도 주춤한다. 노아의 방주를 타고 새하늘과 새땅을 찾아 떠나는 듯 바람조차 신선하고 새롭다. 한 달에 한 번 씩 가족들과 동반하는 답사계절에 합류하니 간간이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창원 발-화순, 고인돌공-중식-운주사-창원 도착. 답사일정 자료를 받아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많은 지석묘가 있을까? 가장 민중적인 부처의 나라 운주사! 고인돌 무덤과 지석묘 좌불을 탐구하기 위해 답사를 떠나고 있다. 화순으로 향하는 길녘에는 갓 뿌리를 내린 초록색 벼가 유연한 몸을 아침 햇살에 내맡긴다. 햇살에 반사되는 찰랑임이 눈부시다. 꾸부렁한 논은 노인의 허리처럼 휘어져 있고 찬란한 7월의 하루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있다. 첫 답사지로 찾은 화순의 지석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200t이 넘는 거대한 지석묘,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3천 500개의 지석묘 가운데 거의 모두가 전라도에 있단다. 지석묘를 발굴해 보면 목이 없는 유골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을 상기시켜 주는 좋은 증거물이 되기도 한다. 어떤 지석묘에는 가족들의 무덤인 듯 한 집단 유골도 발견된다고 하니 어쩌면 삶과 죽음의 차이는 돌 하나 두께의 차이가 아닐까. 지석묘 주위에 핀 유난히 선명한 보라색의 엉겅퀴 꽃,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설지 않다. 우린 홍수가 멈춘 방주에서 내린 듯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 속에서 점심을 먹었다. 낯선 곳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하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화순, 산비탈에서 비추는 북두칠성 바위 때문인지 운주사의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푸르다. 하늘을 바라보니 청량음료를 마신 듯 문득 시간의 갈증을 유발시킨다. 화순 운주사는 야단스레 치장을 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베여 나오는 자연미인 같다. 와불로 잘못 알려진 운주사의 좌불은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와불은 부처님이 모로 누워 있는 모양을 말한다고 하며 운주사 산에 있는 부처님은 좌불 형태를 취한 상태로 누워 있다. 운주사의 좌불은 입체형으로 조각한 매우 쉬운 기법으로 하룻밤 사이에 제작되었다는 설명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었다.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하는 전설만 간직한 채, 창건에서 폐사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말해 주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하니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닭이 조그만 늦게 울었다면 완전한 좌불 형태를 취했을 텐데, 새벽의 닭은 우주의 순환원리를 어기지 않았나 보다. 아니 완성하지 못했기에 인간에게 더 많은 상상력과 애정을 불어 넣어 주었을지도 모른다. 완성보다 미완성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운주사 천불천탑이 있는 이곳은 신과 사람의 매개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불상을 만들어 그들의 정신적인 위안을 얻으며 신을 만나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곳곳에 불상의 머리들이 흩어져 나뒹군다. 아직 선조들이 못다 이룬 소망의 애원들이 베여 있는 듯하다. 좌불이 일어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에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외침의 메아리로 들려온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추측하고 단정하다 결국 신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이는 그들의 바람이자 염원이었는지도 모른다. 흩어져 있는 불상들에게서 오히려 조상의 지혜와 손길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부모 같은 모습의 두 좌불 밑에서 수많은 자식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중생들의 삶을 엿보는 것 같다. 북두칠성 바위 주위의 고사리를 보니 어릴 적 고향 뒷산에 온 듯하다. 고사리는 혼기를 놓친 처녀의 손등처럼 거칠어져 가고 있었다. 내년 봄이면 노처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예쁜 아기 고사리가 태어날 것 같은 예감이……. 운주사의 해우소를 올라서니 육신의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보다 밧줄 없는 암벽 같다. 두려움과 무서움 아니 급변하는 신자유주의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나아가 저승과 이승의 경계선 같기도 하다. 불교 신자라면 부처님의 자비의 바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인간은 개체의 연결망을 통해 영원하듯, 해우소 안의 물질에서 불교의 연기론이 생성되고 있었다. 절은 명당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명당임을 알게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다. 간간이 지저귀는 산새 소리뿐 조용하고 아늑하다. 나뭇잎의 양면에는 적막과 평화로움이 바람에 나붓거린다. 성진이 하룻밤에 참선을 체험했듯, 우리도 하루 동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자산을 듬뿍 불리는 아쉬운 꿈을 꾼 듯 답사 길을 접어야 했다. 아직 좌불은 누워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루기 위한 꿈보다 영원히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있을지 모른다. 운주사 뒷산 중턱에는 감독을 받들어 앉혔던 공사바위가 절을 짓기 위한 감독으로서의 사명이 다 끝났는데도 운주사를 찾는 길손들을 안내하고 있다. 아직 그다지 상업성에 물들지 않은 운주사 답사를 끝내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허기진 가슴에 무언가를 채워진 듯 넉넉함과 포만감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번 답사가 유익한 시간이 되었던 것은 운주사에 대한 강한 궁금증의 매듭이 풀리게 한 점이다. 운주사를 떠나면서 남의 것을 알기 전에 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교훈의 성사를 지니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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