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벽

주혜진

자리에 누워 몸을 둥글게 말아도

새벽은 오늘도 저에게 왔습니다.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쳐도

새벽은 오늘도 저에게 왔습니다.

어둠인 냥 그렇게 숨어있지만

서늘한 초록(草綠)은 

내 발끝,

무릎,

손톱,

눈썹,

이마까지 슬며시 드리웁니다.

새벽과의 시간은

하나의 상념(觀念)과

또 하나의 상념(觀念)과

또 다른 상념(觀念)들을 띄워

행성을 만들며 흘러갑니다.

내 몸을 휘감고 도는 부유감(浮遊感)을

애써 모르는 척합니다.

나의 나약함이 그것을 모르는 척 하도록

손을 잡아줍니다.  

수많은 행성으로 만든 우주 안에서

행성이 떠돌고 나는 그 행성들 사이를 떠돕니다.

새벽은 그것을 지켜볼 뿐입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나약함을 지켜볼 뿐입니다.

언젠가는

어지럽게 떠다니는 저 행성들을 깨부수고

내 손을 잡고 있는 저것을 놓을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새벽은 나에게로 와

우주를 부유(浮遊)하는 나를

지켜볼 뿐입니다. 

<2>

 낡은 지갑

세월의 흔적이 아버지의 손 마디마디에 새겨지듯,

아버지의 낡아 버린 지갑도 그 흔적을 따라 여기저기 주름이 생겼습니다.

지금 당신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던 그 지갑을 잃어버린 채

아버지는 아이마냥 웅크린 채 엉엉 울었습니다.

‘미안하이. 미안하이. 미안하이.……‘

주름의 줄기 줄기를 따라 눈물이 강처럼 흐릅니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청승맞게 옹송그린 노인네의 어깨에 나는 입술을 옹송그린 채

시큼하게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참아내었습니다.

‘지갑 주인 되시죠?’

무미건조하게 흘러나오는 그 목소리에 아버지는 눅눅하게 젖은 목소리로

‘고마우이. 고마우이. 고마우이.…… ’

당신의 손등을 닮은 지갑을 품에 안은 채 아버지는 또 한참을 우셨습니다.

눈물 자국과 세월 자국으로 얼룩덜룩 그림자가 생겨버린 아버지의 잠든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꼭 쥔 채 놓지 않는 그 원망스러운 지갑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러다 케케묵은 지갑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수줍은 미소를 띠운 분홍빛 얼굴을.

맑은 눈동자의 해사한 처녀의 모습을.

어머니.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30년 동안 버리지 못했던 것은 저 낡아 버린 지갑이 아니라

30년을 그리워해 온 따스했던 어머니였다는 것을.

아버지의 눈물이 스며든 어머니의 미소가 서서히 흐려져 갑니다.

<3>

좌선(坐禪)

감각 없이 무뎌진 다리는 찔끔찔끔 저려오고

꼿꼿하던 어깨도 어느새 욱신욱신 쑤셔옵니다.

두 눈을 감으면 보이는 어지러운 세상들.

내 안에서 뒤엉킨 돌아갈 곳을 잃은 여러 갈래의 길.

기어가는 개미의 작은 움직임마저도

바스락 바스락 들려오는 좌선의 시간.

어둠속에 펼쳐지는 어지러운 세상은

어느덧 차츰차츰 깊은 곳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이는 환한 얼굴……

무엇을 얻었느냐.

무엇을 깨달았느냐.

따뜻한 햇살처럼 온화한 웃음이

슬그머니 내 마음속으로, 그리고 세상 곳곳으로

은은히 번져 나갑니다.

슬며시 미소 짓던 나의 입가는

어느새 그 미소마저 마음속에 품고

이제 더 이상 혼자만의 어둠속이 아닌 무아의 세계에서

나는 ‘나’가 아닌 ‘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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